흔히 기업에서 임원이 되었다고 하면 ‘별’을 달았다고 한다. 임원 되기가 그만큼 어려워서 또는 임원이 그만큼 영광스러운 자리여서 그렇게 부르는 것 같다. 특히 대기업 임원의 경우 개인생활을 거의 포기하고 회사 일에 매달려야만 이를 수 있는 험난한 고지이기도 하지만, 고액의 연봉이나 사회적 지위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임원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지만, 한편에선 임원을 ‘파리 목숨’에 비유하기도 한다. 임원이 되면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말이다. 실제 임원이 되면 회사에서 얼마를 더 버틸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모 회사에서는 ‘임원 총량제’라는 것을 실시해서 직원 중 1명이 임원으로 승진하면 기존 임원 중 1명은 퇴직을 해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이처럼 임원은 정말 파리 목숨이 맞는 것일까? 임원이 되면 본인에게 특별한 과오가 없어도 아무 때나 퇴직을 시킬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렇게 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일까? 유감스럽게도 아니면 다행스럽게도 노동법적인 관점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노동관계에 있어서는 그가 이사든 상무든 전무든 아니면 부사장이든 형식적인 title 보다는 실제 그 사람이 어떻게 일하는지에 주안점을 두고 법적인 보호를 받아야 할 대상인지 여부를 판단한다. 그래서 만일 그 사람이 임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맡고 있는 영역에서 최종 의사결정권을 갖지 못하고 여전히 회사 규정의 적용을 받고 출퇴근 시간의 제약을 받으면서 윗사람의 지시를 받아 업무를 수행한다면 「근로기준법」 상의 근로자로 평가를 받는다.
그렇다면 실제 사례에서 임원은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을까? 법원이나 노동위원회는 이사회의 멤버인 등기이사를 제외한 나머지 비등기 임원에 대해 거의 예외 없이 근로자로 보고 있다. 임원이라고 해서 직원과 실제 근무하는 패턴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주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어도 노동법적인 관점에서 임원은 직원의 신분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보면 된다. 다시 말해 임원에 대해서도 「근로기준법」 상의 해고 제한 법리가 적용되어 정당한 이유없이 해고를 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임원이 파리목숨이라는 얘기는 왜 나오게 된 것일까? 다양한 분석이 있을 수 있지만 임원과의 계약관계를 근로계약이 아닌 민법상 ‘위임’계약으로 오해하는 데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으며(위임계약의 경우 아무 때나 계약을 해지할 수 있음. 실제 임원과 계약을 체결할 때 위임계약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많으나 실질은 근로계약에 해당됨), 실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알더라도 임원이 회사를 상대로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을 회사가 악용하는 데서 기인한 측면도 있다고 본다. 실제 대부분 임원들의 경우 회사에 맞서 싸우는 것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또는 후배들 보기에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 서운한 감정이 있더라도 회사를 상대로 다투기를 꺼려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원으로 퇴직했다 하여 결코 안락한 노후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고령화시대를 맞아 재취업이나 창업을 강요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젊은 임원이 퇴직하는 경우 더욱 그러하다. 그렇지만 재취업이나 창업 모두 그리 녹록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창업한답시고 퇴직금을 몽땅 날리는 경우도 다반사로 일어난다.
따라서 특별한 대책도 마련해 놓지 못한 임원이 특별한 이유없이 퇴직을 강요당할 경우라면 자존심 때문에 아무런 문제 제기 없이 회사를 그만둘 것이 아니라 본인이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물론 그동안 몸담았던 회사를 상대로 법적인 다툼을 벌이는 것이 여간 고통스러운 것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자존심 때문에 아무런 대책없이 회사에서 쫓겨나는 것은 더 큰 고통을 초래할 수 있다. 요즘 같이 경기가 좋지 않은 때에 일터를 떠나는 것은 엄동설한에 집을 나오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또한 회사에서도 가급적 임원들의 고용을 안정시키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수시 발탁 승진이나 인건비 절감도 좋지만 그걸 이유로 아무런 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임원을 졸지에 갑자기 그만두라고 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특별한 하자가 없으면 임원과 약속한 계약기간만큼은 지켜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임원들이 스스로를 ‘파리’가 아니라 ‘별’로 여기고 충성심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면, 임원을 둠으로써 발생하는 비용보다 훨씬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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